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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된지 1년이 넘었다. 퇴사할 때 가졌던 "그래 다시 시작이야!"하던 태산도 들어 옮길 것 같던 기백은 사라진지 오래다. 큰 꿈을 품고 상경한지 10년만에 다시 돌아 온 곳이 고향집 내 다락방이라는 것이 무척 서럽기도 하고 그래도 안식처가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현실을 돌아보면 내 모습이 제법 한심하다. 어린 시절 많은 꿈을 키우고 넓은 세상을 상상하던 다락방에 돌아와 앉은 나는 금의환향은 커녕 나이 서른에 빨리 취직'되야'하는데 하는 백수다. 무한 경쟁시대에 나는 천하태평하게 뭉기적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속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태평하지 않다. 하루종일 뭉기적대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든다. 잠시 깊은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취업지원서를 작성할 때면 조증에 걸린 거 마냥 무협소설을 써댄다. 일케 만감이 교차하고 많은 생각이 오가다보니 점점 옛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귀향살이하며 권토중래를 꿈꾸던 그 심정마저 이해되려고 한다... 정신병인가?

흠, 많은 백수들 중 나만 그런걸까? 내 생각에는 백수생활에도 좋은 점들이 있다.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많아져서 제법 좋다. 아직 젊다면 백수생활 잠깐해보라고 권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백수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낀거 생각나는거 끌적이면서 블로깅해보려고 한다. 나중에 돌아봤을 때 아 시절 이런 기분 이런 자세를 잊으면 안 되겠구나 할 수도 있는거고 또 같은 백수가 만약 본다면 위안이 될까 싶어서다.

백수일기 1. <야수가 되고 싶은 남자>
저녁에 아버지랑 나란히 앉아서 티브이를 봤다. 우리 아부지는 가끔 K1 채널을 켜놓으시고 격투씬을 즐기신다. 내가 어릴 때 당시 어린이들에게 대 유행하던 WWF를 보고 있노라면 "야 그짓말하는 거 뭐하러 봐, 리모콘 이리줘" 하시던 분이 그런 취미가 있으셨다니 내가 아버지를 잘 몰랐구나 싶다. 오늘은 무슨 네덜란드 선수특집방송이다. 그는 움직이 빠르고 탄탄한게 무척 잘 싸운다. 한마리의 야수같다. 그 선수가 상대를 쓰러뜨릴 때면 아버지와 난 동시에 "캬하"하는 감탄을 내뱉었다. 아버지랑 이렇게 함께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내가 백수가 아닐 땐 생각도 안 해봤던 일인데, 가족보다 밖에서의 일이 더 중요했는데... 백수라는 현재 상황에 조금은 감사할 일이다. 아모튼 남자는 다 똑같은가부다. 나이가 적든 많든 야수 같은 남성을 동경한다. 그리고 야수 같은 사내가 싸우는 순간 그 야수가 되어 내가 싸운다. 그래, 남자는 야수가 되고 싶다.

다락방에 돌아와 앉으니 나는 야수가 아니라 백수다. 이번주에 어디 발표 나더라? 어디 입사지원 내일까지 마감인데... 이건 야수랑 거리가 멀다. 나도 야수가 되고 싶단 말이다! 당당히 사각 링에 올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포효하는 그런 야수가 되고 싶다. 그런데 말이다. 나이가 드니, 또 백수생활을 하다보니 격투기를 볼 때 승자보다 패자의 고개 숙인 얼굴과 남 몰래 훔치는 눈물에 더 시선이 가고 맘이 쓰인다... 아직 늙은 나이는 아닌데 왜 벌써 이럴까? 나는 아직 젊다. 도전할 때고 패기가 넘쳐 흐를 때다, 그렇다. 우선 야수가 되어보자. 세상아 기다려라 KO 시켜주마
Posted by my3124